지옥에 대한 묘사

NT Wright의 ‘Surprised by Hope’ 11장을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글을 쓴다.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에서, 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깊은 신학적 이해가 판타지 문학을 빌려 기가 막히게 묘사되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옥에서 버스를 타고, 천국에 도착한 죄인들은 너무 실재적이라서 광활하게 크고,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강하기까지 한 천국의 자연에 압도된다. 풀과 나무도 무척 크지만 서도 건드리면 아프다. 천연한 실제. 새 하늘과 새 땅의 실존적인 의미를 튼튼한 자연의 이미지를 빌려서 묘사했다. 반면에, 자기 집착이라는 우상숭배로 하나님과 멀어진 지옥의 영혼들은 지극히 비실존적이다. 끊임없이 하나님, 그리고 타자로부터 멀어지길 원하기 때문에 이사에 이사를 거듭해서 어느새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이 수백마일에 이르게 된다. 동시에 끊임없는 자기애로 인하여,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길 거듭하며 블랙홀처럼 쪼그라들고 만다. 존재하긴 하되 천국의 광활한 실제감에 비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져버리는 것이다.

NT Wright는 탄탄한 신학적 토대 위에 씌어진 루이스의 상상에 경의를 표하며, 동시에 그와는 또다른 선을 그어나간다. 첫째는 장소적인 측면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천국. 첫째 죽음을 맛본 우리가 가게 되는 낙원은, 예수님 재림 때 비로소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닌 중간 경유지라는 것이다. 육체는 소멸되기 때문에 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기다리게 되는 안식처. 한편, 성도들이 모두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 재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제공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천국의 삶은 예수님의 재림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면서 이뤄지는,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이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그 책에서 지옥에 있는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자들로서, 무언가 심판이라는 단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로 묘사한다. 어딘가 죽음 이후의 삶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장소 또한 우리 지구가 아니다. NT Wright는 하나님께서 지구, 태양들을 완전히 제거한 뒤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계를 새롭게 회복시키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루이스가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적 인식론(epistemology)에 물들었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곧잘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나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플라톤 철학에서 비롯된 유산이다. 특히나 천국은 영혼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는데, 톰 라이트는 이것을 비판하며 천국의 새로운 육신이 사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단, 내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보면..

지옥에 대한 묘사를 새롭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루이스가 이야기한 ‘네 뜻대로 해라’는 동족들.

수도사들이 끊임없이 영성훈련하며 깨달은 진리: ‘완벽하게 내 자신을 깨어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를 받으실 수 없다’

다시 말해,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파괴하지 않으면, 내 자아의 모든 것을 쳐 굴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받으실 수 없다. 아니,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재림 때에… 영혼만 있다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좇아 작아지고 작아져 점같이 되어버린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육체가 있다면? 시공간에서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요한 계시록 21장에 나온 것처럼, 새롭게 지어진 예루살렘 성안에 성도들이 살지만, 거기서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부터 비롯된 시내가 성밖으로 흘러나오고, 생명나무들이 그 내를 따라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악한 이들에게도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인가?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부패하지 않고, 죽지 않는 육체. 악인들도 이것을 가질까?

인간들이 아닌 상태가 된다고 NT Wright는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들은 영혼이 있을까? 육체는 어떠할까?

육체와 영혼의 분리는 성경에서도 써 먹는다. 육체와 영혼을 모두 멸하실 수 있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다시 말해 사탄이 공격할 수 있는 범위는, 육체 정도가 다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영의 세계에서 큰 싸움을 하고 있나?

그 악의 무리의 잔재는 하나님 창조세계의 회복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심판의 결과물이다.

이 생각은 중요하다. 악인의 처리. 하나님의 공의는 완벽한가? 에 대한 대답을 잘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충분했는가? 하나님에게 실수는 없었는가? 어쩔 수 없었는가?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종말론의 모습에서, 악의 기원을 찾을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악이 어떻게 대응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서 하나님과 악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고, 그 역학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그 역학관계가 만일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되었다면, time integral term이 있다고 가정했을 시, t=0 일 때의 solution을 시간 축에 따라 extrapolate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악의 초기 관계. 즉, 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악이 정녕 영영히 남아 지옥불과 유황못에 던져질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의 은유적인 표현이라면.. 이는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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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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