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 the one God helps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예수의 우화 중에 사람의 이름이 명명되는 것은 이 우화가 유일하다. 나사로. 하나님이 돕는 자란 뜻이고, 마리아 마르다의 오빠 되는 나사로와 같은 이름이다.

<본문>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장은 참 쉽지 않은 본문이다. 일단 첫번째 문단도 어렵다. 그 불의한 청지기가 대체 무엇을 지혜롭게 하였기에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재물이야기를 한 다음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재물을 좋아하는 자. 바리새인. 그리고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는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 본문 이야기를 하셨다. 간음 이야기를 하셨다. 간음 이야기가 갑자기 여기 왜 나오지? 하나님 섬기는 것과 재물 섬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우상숭배요 간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건가. 예수님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가르치시면서, 성령 충만한 그 분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듣는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무슨 방식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 신학자들 골머리를 썩히게 하는 본문이다. 나사로가 천국에 이르는 데 예수를 믿었다는 둥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둥의 이야기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는 일단 죽어서 천국(낙원 – 하나님의 나라가 아님)에 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다. 부자는? 바리새인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죽어서 음부에 가 있다. 갈증한다. 뜨거운 불꽃. 난 그 불꽃을 이렇게 생각한다. 갈증의 현현. 끝없이 행복을 갈구하고 구원을 갈구하되 자신에게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 결국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분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 일전에 생각했던 지옥의 모습. 조금 다르다. 똑같은 하나님이 임재하되 의인에게는 빛으로, 죄인에게는 뜨거운 불로 공의의 분노를 드러내는 파괴와 심판의 하나님의 모습인데 반하여, 지금 생각했던 그 뜨거운 불의 모습은 하나님과 멀어져 생명수를 잃는 자의 강렬한 갈증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무척이나 신기한 것이다. 이 3차원 세계에서 존재를 규정짓는 것이 3차원에서 관찰되는 물질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어차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8년에 한번씩 싹 바뀐다. 8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같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DNA를 갖고 있다.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우리를 우리로 규정짓는 tag는 무엇일까. 물질에 있을까? 아니면 3차원 이상의 초월적인 영적 존재가 있을까?

하나님이 부여해 주는 새 몸은 확실히 실체를 규명해주는 물질일까? 날 구성하는 물질 하나 하나 모두 ‘나’ 일까?

죽어서 낙원에 간 나사로. 음부에 간 부자. 이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시신은 지구에 있다. 그리고 흙에 묻혀 흙으로 diffuse 되어 돌아간다.

돌발 질문: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일까. 결국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까.

자. 19절. 자색 옷과 고운 베 속옷. 매우 부자이고 존중받는 신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즐기더라. 나사로. 대문 앞의 거지. 그에게 무척 무관심하다.

개들이 그 헌데를 핥더라. 실제 개의 침에는 antibody peptide가 가득하다고 한다. 실제 상처에 도움되는, 그 염증성 종기에 도움되는 성분이 개에게 가득할 것이다. 실제로 그 구 시대에 개의 침을 약 비슷하게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John Ortberg가 했었다.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이것은 고대 유대에서 큰 환대를 의미한단다. 잔치가 벌어지고, 그 잔치의 주인은 아브라함. 팔을 굽혀 존경을 표하며 머리를 숙여 host에게 인사할 때 그 머리가 주인의 가슴에 닿는다고 한다. 나사로는 바로 honor of guest가 된 셈이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의 모습은 그것을 의미한다. 고통 받았던 이가 받는 대접. 위로. 최고의 위로.

부자의 말을 면멸히 살펴보자. 일단 그는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알아본다. (분명 죽은 이후에도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고, 상대의 실체를 알아볼 비슷한 시각적 인식을 한다? 과연 시각적 인식일까? 무엇일까?) 눈을 들어 멀리 보고. 시각적 인식은 맞나 보다. father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부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천한 이다. 아브라함에게 부탁한다. 나사로를 시켜 물 좀 찍어 주라고. 교만함. 회개.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 없다.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뿐이다.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서로 건너갈 수 없다. 그런데 천국에서 음부로 누가 건너가고자 하는가? 나사로다. 아브라함은 이를 imply하고 있다. 나사로는 그 아픔과 고통을 아는 터라 순수하게 부자를 돕고 싶어 했을 것이다.

가만! 실제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 나사로의 말을 유대인들은 들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들을 들어도, 눈으로 보아도 예수를 믿지 못했다. 예수의 말은 정작 사실이 되었다. 나사로는 사흘이 지나 썩었다. 그 썩은 몸이 부활했다. 다른 이의 부활과 달랐다.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자, 나사로는 고통을 안다. 부자를 돕고 싶어 하는 그. 부자는 모른다. 음부에 가 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이 원하는 최대의 guest가 되었다. 실제 예수에게 마르다 오빠 나사로는 사랑의 대상이었다. 잔치에 초대해 품에 안은 이였을 것이다.

나사로는 천국에 올 때 천사들에게 받들려 왔단다.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또같은 죽음인데 누구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온다. 그게 필요할까? 의미는 무엇일까?

존 오트버그의 오늘 설교의 주제는 이것이었다.

“Let the God’ generosity flow through you.”

부자가 나사로를 무시했으나 우린 그러지 말고, 하나님의 관용을 우리가 가진 소유로 마음껏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돈을 베풀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존이 이야기한 대목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화를 통해 죽음 이후의 모습. 하나님. 아브라함. 여러가지를 드러내고자 했을 것 같다. 굳이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 부분에서 엉터리 비유를 썼을 것 같지는 않다. 항상 머릿 속에 있었던 생각일터.

큰 구렁텅이.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기 이전에도 죽음 이후의 낙원과 음부의 구분이 있고, 그 사이에 엄청나게 큰 chasm이 있단다. 비로소 쭉정이와 낟알이 구별된 순간이다. 그래서 낟알은 곳간으로 들이고, 쭉정이는 불태운다. 심판은 역시. 배제와 용서이다. 결국 ‘네 뜻대로 하라’ 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나라 성 밖에서 영원히 머물게 해 줄 것 같다.

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희망은 성에서 강물이 나와 성밖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옥은 정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답이 되지 않는 대목은, 그 심판받은 이들을 창조할 수 밖에 없었나 하는 것이다. 악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었나 하는 것. 악의 기원에 대한 대답을 정녕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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