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법칙 – The Law of Love

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붙들고 있는 질서 혹은 원칙’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만들어 모든 물리 원칙을 하나의 공식에 담으려고 했다. 질량과 에너지 등가원칙을 발견한 그는 시간과 공간 사이 관계식을 세웠으며, 결국에는 이 모든 변수들을 담아보려고 했다.

현재까지 우리 인류는 여섯가지 fundamental units을 가지고 있다. degree(온도), 길이, 시간, 조도, 쿨롱,

kilogram, meter, candela, second, ampere, kelvin, and mole (from Wikipedia: fundamental SI units)

난 이 모든 물질계와 영계를 포함한 하나의 법칙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타락과 구속. 그리고 사랑의 회복.

타자란 개념은 놀랍다. 자유의지가 있는 이들끼리는 서로 타자이다. 원수이다.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이뤄진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마음. 태도. 계명을 지키려는 자세. 그것은 곧 계명을 지키는 것과 동일화된다. 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몸과 마음과 힘과 지식을 다해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란다. 머리가 꼬리에 물리는 형국이다.

저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분자 하나하나를 생각할 때마다 개개인이 생각납니다. 자유의지.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의 계명은 곧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이란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이란다.

열역학 제 2법칙. 열역학 제 1법칙을 생각해본다.

에너지는 보존된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효율 100%의 열기관은 만들 수 없다.

사랑의 법칙은 열역학 법칙을 위반하는 듯 보인다.

난 우주의 타락 후 열역학 제 1법칙과 2법칙이 생겨났다고 본다. 에너지 보존 법칙. 보존된다. 그리고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자유도가 증가한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이 세계. 자유도가 증가한다. 다 제각각 놀겠다고 난리다. 누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이 공기분자가 1초 뒤 어디에 있을지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이를 증명한다.

타락 전은 어땠을까? 난 그곳은 열역학 제 1,2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열역학 제 1,2법칙이 적용되는 곳은 슬프다.

우리가 지구에서 열역학 제 1,2법칙이 적용되어 끊임없이 에너지를 잃고, 방출하며(지구의 온도는 우주보다 높으니까) 사는데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잘 사는 이유는 태양의 존재 때문이다. 우주가 차면서 지구와 태양 같이, 별들 같이 따뜻한 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희한하게 우리는 전반적으로 무지하게 추운 우주를 보면서 선을 생각해낸다.

에너지는 보존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소스 텀이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자. 하나님이 무한한 공급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열역학 제 1,2법칙은 깨진다.

난 예수의 초월적인 몸. 그 답을 사랑에서 찾고 싶다. 하나님께서 부활시킨 새 몸은 분명 우리 과학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몸이다.

물리법칙? 우습다. 분명 예수에게, 부활한 나사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공급.

묘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로만 올 수 있는 그 사랑이라는 것. 그것을 우리가 intentionally practice할 때 사랑은 배가된다.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증가한다.

우리는 피부로 안다.

‘사랑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물리학자들이 사랑에 대한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묘하게도, 사랑은 무한한 공급원에서 소싱을 받는다. 보존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이다.

하나님이 죄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유의지가 가득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죄로 인해 잃어버린, 증가해버린 엔트로피에 대해 보상을 해야만 한다.

허나 이 결핍은 하나님이 채운다.

직접 인간세계에 내려온, 안개마냥 부연 미지의 미래로부터 뚜벅뚜벅 걸어온 예수.

그가 엔트로피 증가에 제동을 걸었다. 사랑으로 물질세계마저 회복시키겠단다.

사랑이 있는 곳에 열역학 제 1,2법칙은 부서진다.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한다.

유물론은 그래서 좋지 않다. 사람들이 좀 꺼린다.

도덕률? 자연법칙? 왜 수만년간 사람들이 선을 깨달았냐구?

그건 말이지. 바로 이 사랑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이야. 피타고라스 삼각공식을 굳이 계산하지 않더라도 대각선으로 질러 가는데 빠르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사랑을 해보면 그게 무관심보다 훨씬 낫다는 걸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이야. 바로!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유물론적 과학법칙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경험되는 에너지 증가법칙! (사랑을 하면 희한하게 에너지가 솟아) 영생의 맛을 미미하게나마 맛보기 때문이야. 삶의 죽음보다 낫다는 것을, 무관심에서 사랑으로 걸음을 조금씩 옮기면서 느끼는 거야. 삶은 좋다는 것을. 생명은 고귀하다는 것을.

우리 안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건 바로 이거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거야.

사랑. 믿음. 사람과 사람 간의 엔트로피를 결국 줄게 만들고, 무관심과 교만으로 무질서해지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사랑이라는 법칙 하에 질서정연하게 잡히는 거야. 부서졌던 몸의 부분부분들이 다시 하나가 되어 거대한 육체를 이뤄가는 거지.

마지막 조립은 하나님이 하실거야. 새 하늘과 새 땅. 때가 되면, 열역학 제 1,2법칙이 사라지고, 새로운 소스텀으로 인해 (어쩌면 열역학 제 1,2법칙은 그 때도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무한한 소스텀의 등장으로 보존법칙이 무색하게 되는거지) 사랑의 법칙이 dominant 해지는 거야. 재미있는 거는 그 새로운 건물. 이미 건축재료는 우리 인간이 대부분 마련해놨을지도. 하나님은 입맛따라 고르실 거야.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때문에 멸망한 게 아니야. 무관심 때문이었어.

어쩌면, 아모리의 악이 관영치 않았으므로 (아직 한계점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심판을 미루시더라.

이것은 무관심의 한계적 수치를 얘기하는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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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Stanford Grad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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