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 한번 죄를 자복함으로 깨끗함을 얻는다? 이 구절의 의미는 이게 아닌 것 같습니다. 8절을 보지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저는 9절의 의미는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분명한 죄의 실체를 파악한 이후에 진리가 거할 터전이 마련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티 하나 없는 의인이 들어설 기초가 된다는 뜻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구원은 우리 시대에서 값싼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손에 무작정 쥐어주고 보려는 천국 티켓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에서 무작정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길 원합니다.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믿어라.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라. 그러면! 계시록 3장 20절에 나온 것처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가 들어가 영원히 거할 것이다. 한번 믿은 자, 회개한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책임지신다.

현 칭의론에서 가장 문제시되어 보이는 부분. 단번의 믿음은 구원. 성경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나오고, 믿음은 영생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만, 단번의 믿음이라는 표현은 잘 보지 못했습니다. (찾아볼 필요가 있음) 단번에 악을 제거하신다는 것은 익숙합니다만…

이 칭의론. 다시 봐야겠습니다. (칭의론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 교리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무척이나 전투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구원을 반항하는 사람들 가슴 속에 심어보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믿는 상사가 하사에게 믿음을 강요합니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얻어 복음을 ‘듣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순수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라는 성경구절을 그대로 믿고 어떻게든 ‘들려주려’ 합니다. 어쩔때는 처량합니다. 제발 복음 한 번 들어주세요 하고, 선물에, 미소에, 순종함이 덧씌워진 아부에 인내, 애절함까지 곁들입니다. 목사들이 옳은 말, 심지 곧은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설교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 구원에 이르기 원하기 때문에, 성도를 귀에 달콤한 이야기만 합니다. 어떻게든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그의 마음이 열려 ‘단번의 믿음’이 이뤄지고, 신앙고백과 침례에 따른 우리 보기에 하나님 나라 가기에 합당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가 탄생합니다. 수요예배 때의 설교와 주일 예배 때의 설교가 분위기도 다르고, 지적 수준도 차이가 납니다.

믿는 이는 복음의 힘에 의해 죄에서 멀어지고, 선행에 눈을 뜨며 서서히 성화구원의 단계에 접어든다. 칭의구원에 이은 다음단계입니다. 성화구원.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서 바울이 칭의구원과 성화구원을 나눠 설명하는 구문을 서신서 전체를 아무리 뒤져봐도 저는 찾기가 어렵군요.

믿는 이의 품격이 떨어지니, 이건 아무래도 문제다 하고 제자훈련이다 영성폭발훈련이다 성경공부다 난립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핵심교리가 단박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그것을 확신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는 이상 제자훈련은 신앙고백과 동등해지지 않으며 일단은 부차적인 단계가 됩니다.

불에 타서 부끄럽게 되더라도 일단 천국에 입성하고 봐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값싼 구원. 어떻게든 믿게 하라. 일단 믿으면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과연 그런가요? 한번 믿으면, 정말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도 천국에 가는 건가요? 이게 건강한 이론같아보이나요? 눈 씻고 다시 보세요. 정상이론 같아 보이나요?

어떻게든 말씀을 듣게 하라. 심어라. 한번 믿는 이는 구원을 얻은 것이요 절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아니한다는 교리. 회개는 단번에 하는 것이요, 그 단번의 회개와 한번 신앙고백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이로 인침을 받았다는 교리.

옳은 것일까요? 일단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는 제쳐두고 이것으로 인한 기독실천론을 살펴보지요.

일단 한번 믿기만 하면 장땡이다. 뿌려진 씨, 싹을 틔운 그것. 과연, 과연 씨를 뿌리면 끝일까요.

하나님이 알아서 잘 키우는 것일까요. 그래서 일단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입장 티켓을 거머쥐는 걸까요. 아니, 하나님께서 도장 꽉 찍어서 넌 내 것이라고 인쳐버린 것일까요. 자유의지를 직접 주셨다는 하나님께서, 그 자유의지를 끝까지 우리에게 허락하시되, 아들을 버리는 순종과 겸손으로 우리에게 종이 되신 당신이,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우리 하나하나를 모으시는 하나님이, 한 때는 당신이 좋았으나 지금은 싫어죽겠다는 아들을, 인침받은 이후에 난 하나님이랑 같이 살기 싫다고 끝까지 우기는 아이 손을 꽉 붙잡고, 자기 집에 가둬 버리는 아버지일까요. (물론,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님을 만난 순간 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을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기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힘들게 그리스정교와 개신교가 합의를 보았습니다. 구원은 믿음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요 믿음과 행위의 짬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는 선행은 그림자같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라 하였습니다. 개신교의 승리에 도취되 행위의 중요성을 놓치지 마십시오. 후자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믿는 이라면 더이상 어둠에 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둠에 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에 눈을 뜬 자. 악에 대한 승리를 목도한 자. 그는 빛을 갈구합니다.

지옥은 안에서 닫힌 문입니다. 하나님이 싫다는 자가 끝없는 자유의 향유 끝에 도달하는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만을 위한 장소. 자신 안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이가 끝없이 자신을 갈구하고 자신 안에 갇혀버리는 장소. 그곳이 지옥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나라를 싫어합니다. 보지도 못합니다. 등을 돌려 어둠을 갈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의인만이 선택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를 힘입어 담대히 티끌 하나의 죄마저도 탁탁 털어버린 자만이 거할 수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악에 대해 분노하는 자. 질투하는 자. 공의로운 자. 그리고 올바른 사랑이 넘치는 자. 하나님 옆에 거할 수 있는 자는 티끌만의 죄도 없는 자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베드로와 같이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승리를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믿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자를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였습니다.

큰 고통 안에 있는 자들을 봅니다. 묘하게도 정말 묘하게도 크나큰 고통 속에서, 자아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고도 모자랄 엄청난 고통 속에서 비명과 아픔 속에서도 해바라기같이 고개만큼은 빛을 향해 바라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희한하게도 선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우리 시대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빛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영웅적 행위를 보여줍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올 것이 아니요.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정말 열심으로 그를 좇았을 가능성도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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