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찰나에 불과한 세속적 미래에 보물을 쌓는 이의 어리석음에 대해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원수는 그들을 위해 영원을 예비해 두었다. 그래서 인간의 주된 관심을 영원 그 자체와 이른바 현재라는 두 가지 시점 모두에 집중시키려 들지. 현재는 시간이 영원에 가닿는 지점 아니냐.

과거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원을 닮아 있다.

한마디로, 미래만큼 영원과 닮지 않은 건 없어. 미래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찰나적인 부분이지. 과거는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흐를 수 없고, 현재는 영원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우리가 창조적 진화니 과학적 인본주의니 공산주의 같은 사상체계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상들은 인간의 애착을 미래에, 그 찰나성의 핵심에 붙들어 놓지.

따라서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보지.

원수(예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쫗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p.90

세상은 쾌락으로 가득찬 곳. 악이 하는 일은 그 주어진 쾌락을 비트는 것.

원수는 내심으로는 영락없는 쾌락주의자다. 금식이니 철야기도니 화형주니 십자가 같은 건 눈속임에 불과해. 아니면 바닷가에 밀려드는 물거품 같은 것이거나. 원수의 바다로 나가보면 쾌락, 더 많은 쾌락이 넘실거린다. 원수도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지. 그 작자 우편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하지 않더냐. (시편 16:11)

우! 원수는 비참의 직관 속에서 우리가 도달하는 높고도 준엄한 신비를 눈꼽만큼도 모를 게다. 웜우드, 그 작자는 속물이야. 부르주아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그는 세상을 쾌락으로 꽉 채워 놓았다. 자고, 씻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놀고, 기도하고, 일하는 것처럼 자기가 조금도 개의치 않는 가운데 인간들이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것들을 주었다. 그러니 무엇이든 비틀지 않으면 유용하게 써먹을 길이 없는 게야. 우리로선 지독하게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는 셈이지. 우리 편에 본래 주어진 거라곤 단 하나도 없으니까.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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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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