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단순함

우리는 삶이 힘들어질 때, 신앙에 고민이 찾아올 때 종종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단순하게 하소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당신께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그러면서 우리는 단순해지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애써 어려운 삶의 고민들을 잊으려 하고, 이해가 안가는 기독교 교리들을 애써 머리에 담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애써 웃으려 합니다. 힘써 기뻐하려 합니다. 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않으려 하면서 말입니다. 심지어 남과 내가 고통을 받는 이유를 찾으려는 생각, 어려운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나님에 대한 도전 내지는 죄로 여기면서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생각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이해를 포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고민을 접으려 합니다. 마음을 굳게 다잡고, 씹혀 지지 않는 교리를 그냥 꾹 삼키려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어느 면에서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지르고 보자”라는 격언이 있듯이, 옳다 싶은 일은 행동에 옮기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남을 돕는 일, 선행에서는 그렇습니다. 내가 농구를 좋아할지 안할지 분석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한번 해보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이듯 말입니다. 부드러운 가죽 촉감의 농구공을 탕탕 바닥에 튀기며, 스프링같이 바닥을 차고 올라 공을 골대에 집어넣을 때의 희열을 만끽할 때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농구는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구나 하구요. 종교생활에서 선행도 이와 같습니다. 남을 도왔을 때의 그 뿌듯한 느낌, 어디선가 모를 샘솟는 에너지는 선행을 좋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은 혼자 방안에서 착한 일을 할까 말까 고민했을 동안에 예측하기 힘든 것입니다. 우리 온 몸과 마음이 ‘사랑’이라는 창조질서에 순응할 때 얻는 그 조화의 에너지를, 무질서하게만 살아온 습관 속에서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실천으로 옮겼을 때, 성경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고민들도 있습니다.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말씀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감사하거나 기뻐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고민들을 하고 계실 때, 그저 머리를 짓누르며 단순해져라 하고 주문을 외는 여러분들을 위해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머리가 거절하는 것은 결코 가슴이 예배하지 못한다 – 존 쉘비 스퐁

신앙생활이 단순해지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문을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춤을 배우는 댄서와 같습니다. 어떤 춤에서 한 동작을 단순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펜으로 선을 그어 내리듯이 몸이 원하는 동작을 힘있게 그려낼 때까지 몸에 익어버린 옛 습관을 버리고 새 습관을 근육세포 하나 하나에 익혀주어야 합니다. 농구선수 역시 힘있고, 유연한 동작을 군더더기 없이 하기 위해서는 농구의 많은 규칙을 알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몸에 익혀야만 합니다. 농구의 다양한 기술들을 몸과 머리에 익혀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는 절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실재하는 것은 어쨌든지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샤프 펜슬의 모습을 묘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능과 모양을 설명하고 색과 디자인을 묘사해야 하는 등 말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독교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실재적이며 구체적인,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이지 않고 가장 구체적인, 살아계시는 실체의 야훼 하나님 말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는 진리와 사랑은 구체적인 선을 가리킵니다. 일견 단순 명쾌해 보이나 실상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선을 이루려 열심히 노력해 본 사람,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씨름해 본 사람은 압니다. 그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요. 단순 명쾌해 보이기만 하는 어떤 성경말씀은 우리가 실재를 수없이 왜곡하는 사탄의 정교한 공격을 다 걷어내었을 때 비로소 명료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어렵고 복잡한, 심지어 모순되어 보이는 성경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강조하건대, 진정 기독교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손으로 그러잡을 수 없는, 짐작할 수 없는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신의 것으로 믿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순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진리를 잘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게 된 진리를 몸에 익숙하게 익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해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충분히 단순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단순함은 결국 다분한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늘 해오듯이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교제하고, 성령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올바로 이해하며 그것을 실천합니다. 이것을 매일같이 수행하는 이는 신앙생활이 보다 더 정교해지고 명료해지며 비로소 단순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동시에 본인이 서 있는 일상의 무대가 매일같이 벌어지는 영적전투의 현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단순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단순한 신앙생활을 꿈꾸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성경을 깊게 공부하십시오. 묻는 것을 두려워 마시고, 고민하십시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노력을 쏟으십시오. 단순함이란 억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 성실한 자에게 그 보답이 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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