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려진 기독교 발췌록

뒤틀려진 기독교 – 자크 엘룰

하나, 모순들

‘엘룰의 성령 설명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27쪽)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독재적이거나 권위적이거나 또는 기계적이거나 자기충족적이지 않다. 성령은 자유롭게 하신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달리 말하면 성령은 인간을 억압하면서 하나님이 하시기로 하신 것을 인간에게 시키는, 구속하시는 분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반대이다. 성령은 인간을 한번 노예 상태에서 해방한 후, 그를 자유와 선택 그리고 열린 가능성의 상태에 두는 하나의 힘이다. 성령은 인간을 조명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과 세계에 대해 깊고 새로운 시야를 던지게 하는 진리의 힘이다. 성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선택할 때 그 행동을 증가시키는 힘이다. 그리고 성령은 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보이는 양심의 능력이기 때문에(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성령에 의해 회심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은 인간은 절대적으로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인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에 의해 가능해진 실천의 가치와 요점을 충분히 의식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책임 있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성령의 임재가 가져오는 결과이다.

‘선악과를 먹으며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악이 아닌, 자신만의 도덕을 갖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닌 인간이 세우려 하는 모든 도덕은 악이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비도덕적이다.’

(31쪽) 그 무엇(X-기독교적 사상. 여기서는 기독교적 사상이 왜곡되어 일종의 주의ism가 되어버린 기독교와 대조되는 사상이다)은 도덕조차도 뒤짚어 엎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행동은 인간의 자유인데, 이는 참 자유를 뜻하는 것이지 인간의 자율의지라든가, 독립이나 일관성이 없는 것에 대한 추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 도덕질서들을 지지할 수 없고, 선과 악을 세우는 도덕의 원리들을 철학적이거나 자연주의적이거나 사회학적이든 간에 지지할 수 없다. 창세기 서두부터 우리는 아연실색할 사실을 배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암시인데, 아담과 하와가 열매를 취할 때 얻은 것은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었다. 곧 인간이 “열매를 먹으면서” 얻는 것은 “선과 악을 아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지식은, 하나님처럼 이것이 선하고 저것이 악하다고 선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적할 만한 또는 하나님보다 우월한 선과 악은 없다. 또한, 하나님을 초월하는 선과 악도 없다(이것은 우리가 구약의 하나님이,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은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이것이 선이고 저것이 악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획득한 것이고 이것이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결별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인간이 선언하게 될 선과 악이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과 일치한다고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도덕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이 악이다. 이것은 선을 되찾고자 도덕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도덕들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하나님은 그것들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며, 그를 참된 윤리적 상황에 두시되, 인간이 그의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는 확고한 형태를 찾으려고 행하여야 하는 인간적 선택, 책임, 발명, 상상 등의 윤리적 상황에 두신다. 이런 식으로 모든 도덕은 제거된다. 구약의 계명이나 바울의 교훈은 전혀 도덕이 아니다.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살게 하는 것과 죽게 하는 것 사이의 경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스스로 창조케 하도록 자극하는 본보기, 은유, 유추, 비유이다. 예수께서 매우 의식적으로 또한 의도적으로 이미 도덕이 된 계명들을 범하실 때, 그리고 그가 그 위반을 제자들이 떠맡아야 할 일종의 항구적인 품행이 되게 하실 때, 또한 바울이 노골적으로 “어찌하여 너희는 오직 인간의 계명에 불과한 이 계명들을 지키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그들은 유대인의 율법뿐만 아니라 모든 도덕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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