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그리스도인의 덕목: 소망에 관해서

순전한 기독교 214-216쪽

“피조물이 태어날 때부터 느끼는 욕구가 있다면, 그 욕구를 채워 줄 것 또한 있는 것이 당연해. 새끼 오리는 헤엄치고 싶어하지. 그러니까 물이란 것이 있는 거고. 또 사람은 성욕을 느껴. 그러니까 성관계란 것이 있잖아. 그런데 만약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내 안에 있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한 얘길 거야. 지상의 쾌락으로 그 욕구를 채울 수 없다고 해서 우주 전체를 가짜로 볼 수는 없어. 아마 지상의 쾌락은 처음부터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긴 게 아니라, 다만 이 욕구를 일깨워주고 진짜 쾌락이 어떤 건지 암시해 주려고 생긴 걸 거야.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이 지상의 축복들을 반갑잖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쾌락들이 복사판이나 메아리나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지. 진짜 고향을 그리워하는 욕구는 죽은 후에야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니만큼, 이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겠다. 이 욕구가 다른 욕구에 짓눌리거나 밀려나지 않게 하자. 나 자신이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을 내 삶의 주된 목표로 삼자.”

“나는 영원토록 하프나 타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면서 그리스도인이 가진 ‘천국’의 소망을 우습게 만들려는 경박한 이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혀 개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른들의 책을 읽는 법도 모르거든 잠자코 있기나 하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이미지들(하프, 면류관, 금 등)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동원된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 악기가 나오는 것은 현재의 삶에서 황홀감과 무한함을 많은 사람들에게(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암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면류관은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된 사람들이 그의 광채와 능력과 기쁨을 함께 누린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금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천국의 영원함과(금은 녹슬지 않으므로) 귀중함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비둘기처럼 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을 낳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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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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