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단상

이 글은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보고 나면 더 생각이 명료해질 것 같다. 글이 잘 써질 것 같다.

따라서 골격, 개요만 생각해 놓고, 나머지 살붙이기는 나중에 해야겠다.

종교인의 사회참여의 경우, 분명히 사회참여에 대한 논의가 완벽히 구성되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철학으로 산다. 특히 삶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렇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바로 철학의 문제이고, 여기에 새로운 세계관을 안겨다주는 것이 바로 종교다. 나와 세계, 나와 타인의 관계를 바로잡아 주려고 노력한다.

각각의 철학적 관점을 발전시키면, 현대의 사회에서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구체적인 정책, 행동강령, 윤리에까지 종교는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올바르게 잡힌 토대 위에 이성적 추론과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곁들여질 때 잘 수행될 수 있다.

허나 인간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실패와 실수의 가능성을 서로 폭넓게 이해하되, 오류들이 잘 발견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이론을 문서화할 뿐더러 이론체계에 맞게 잘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근거로 든 사례들이나 배경들도 정확히 정리되어야 하겠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진리와 거짓을 다투게 하는 것이 좋다. 종교적인 것도 잘 정리해서 윤리강령이나 정책으로까지 만들어라. 그리고 행정가들과 다퉈라. 이성적인 토론에서 진리가 거짓에게 패배하는 법은 없다. 진리를 담은 좋은 정책안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런 걸 못할 종교집단은 후미로 빠져라. 현대사회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술을 갖지 못한 집단은 토론석상에 앉을 자격이 없다. 신께서 충분히 능력이 되는 자를 준비해 주실 것이니, 믿음이 약한 종교단체들이여 겸손히 뒤로 물러나 있기를. 목에 핏대 세우고, 동어반복과 다름없는 구호만 외치지 말지어다. 절대적 타자성을 지닌 타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예를 들어볼까? 4대강 이야기 말이야. 오오, 백지영 씨 토론을 보고 나면 더 명확해 지겠군.

“불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카톨릭은 이렇습니다. 등등”

“현상 합의”

성령께서 뭐라 하시니…. 이거 다 성경에 있는 내용 성령께서 반복하신거다. 얼마든지 이성을 잘 활용하면, 성령의 음성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성적으로 말이지.

워낙 급하면 일단 순종하고 보던지… 각 교회에서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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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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