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편지: 전개 2 – 예수는 부활했다 (1/4)

전개 둘, 예수는 부활했다.

자, 이제 기적이 인간사에서 배제될 수 없음을 보였어. 기적이란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야기된 사건이며, 바로 신의 행동이 원인이 되는 사건이야. 과학의 진보가 기적을 더 못 믿게 만들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해. 신의 존재와 같이 기적의 존재 역시 과학이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무엇이 절대 아니야. 그렇다면 기적이 정말 일어났는지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역사의 개연성을 따져볼 수 밖에 없어. 역사가 남긴 갖가지 기록으로 미루어 판단하는 것이지. 즉, A라는 사건이 C라는 사건으로 전개되었을 때 전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중간 사건 가운데 하나인 B가 가장 개연성이 높다면, 학자들은 A→B→C 로 역사를 정리할 수 있겠지. 우리가 하나 염두에 둘 것은 B가 기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야. 기적을 배제하지 않고 역사적 탐구를 해보자는 것이지.

난 이번 편지부터 비로소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기독교의 하나님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 온 신, 그 자존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해. 이 논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어.

첫째는, 기독교에서 과연 참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거야. 기독교의 하나님이 진정 선한 신이라면 기독교의 교리는 참된 것이어야만 해. 인간의 부덕함과 한계로 인하여 조금 굽어지고 잘못 이해되었을지라도 그 중심은 빛을 발하는 진리이어야 할거야. 참진리. 우리 이성이 맞닥뜨렸을 때,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듯한 이야기이어야 할거야. 우리를 꼭 안아주는 따뜻하고도 공정한 법칙이어야 할거야. 마치 오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샘물 같은 것일거야. 그 빛을 기독교 교리가 발산해야만 해.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가 찾는 신이 아닐 거야. 예수가 한 이야기들을 따져 보자구. 그가 헛소리를 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둘째는 신과 인간이 어우러진 역사를 탐구해보고, 과연 그 역사가 우리가 찾는 신을 가리키는 지를 따져보는거야. 역사적 탐구를 하는 거지. 마침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 앞에 여러번 나타나 기적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 30여년 넘게 살았다고 주장하므로 그 주장의 진위를 역사적으로 파악해보기 용이해. 그러나 한계가 있어. 지나버린 과거를 다시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확증하기가 어려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따라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설령 결론이 ‘참’으로 도출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것은 ‘참에 제일 가까워 보인다’ 수준에 불과해. 그래서 어쩌면 믿음의 영역이라고 공격받을 수도 있지만, 범죄수사를 비롯한 사실 여부 판단은 모두 이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범죄수사의 경우 제한된 사실을 가지고 이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피고의 유죄 여부를 가려내잖아? 그러므로 최대한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까지 논의해보자.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성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구.

먼저 두 번째 방법을 살펴보자. 첫 번째 방법이 더 엄밀한 방법 같아보이는 데도 생각보다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야.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참과 거짓을 가리는 도덕적 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야. 어떤 것이 진정한 도덕인지 우리는 아직 모르지. 더군다나 진리는 날카로운 칼날과 같이 명확하고도 분명한 실재이거늘 우리는 추상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습관에 강하게 물든 탓에 ‘옳음과 그름’을 따져야 하는 종교적 진리 앞에서 우리는 ‘좋고 싫음’과 ‘같음과 다름’을 따지는 경향이 있어. 진리에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호불호를 앞세워 ‘선택’한다구. 허접한 종교라면 이 첫 번째 논증으로 진위 여부가 갈리겠지만 고등 종교 사이에서는 어림도 없어. 요컨대 어느 도덕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아직 논증도 불가능할 뿐더러 상대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는 부작용까지 야기하지.

두 번째 방법은 이런 면에서 첫 번째 방법보다 나아. 용의자를 찾아서 범인인지 아닌지만 가려내면 되는 작업이거든. 과연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기적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따져보자. 기독교는 기적이 없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진짜 무너져내리니깐.

기독교의 핵심 역사는 바로 예수야. 그의 삶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탄생했고, 그의 부활에 기독교는 뿌리를 두고 있지.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삶의 역사성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기로 하자. 예수는 과연 실존한 인물인지, 그를 가리키는 역사적 자료는 고고학적으로 충분한지, 그 자료들은 신뢰할 만한지, 역사적 예수는 과연 기독교가 말하는 그 예수인지 등부터 따져보기로 하자.

참, 난 이 편지에서 학자들이 다룬 방대한 ‘역사적 예수’를 그려내지는 않을거야. 그럴 능력도 없구. 그러나 신학자들이 그려내는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고 참고 문헌을 표기함으로서 더 깊은 토론을 위한 예비적 작업을 할거야. 따라서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도 양해해 주길 바래.

1. 예수는 실존인물인가?

역사학자들은 예수는 기원전 2~7년 사이에 출생하여 기원후 26~36년 사이에 사망했다고 추정해(1). 예수의 자세한 삶의 면모는 대부분 복음서에서 알게 된 것이야. 예수의 집안과 그의 출생, 생애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면모들이 신약성서, 그것도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마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유대인인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 슬하에서 태어나되,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적혀 있어. 유다 지방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에서 태어난 뒤, 나사렛이란 동네로 이사했지. 그런데 열두 살이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영특함을 보였다는 것 외에는 딱히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없어. 누가가 마리아 혹은 주변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적은 듯한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것이 예수의 어린 시절 묘사의 전부지. 그렇게 성장했던 예수는 나이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기록의 전면에 등장해. 복음서에서는 이때부터의 예수의 삶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해. 남녀평등, 아이존중, 겸손의 미덕 등 당시 지나치리만치 혁신적이었던 그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다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십자가형으로 죽은 뒤 부활해서 승천한 이야기까지 적었지.

예수에 대한 다른 기록들은 어떨까? 비기독교적인 걸루 말이야. 성경만큼 자세하고 풍부한 기록이 있지는 않지만,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 역시 적지 않아. 대표적인 것이 역사가 타키투스가 110년 경에 쓴 «연대기»라는 책이 있는데, 15권 44장 2절에서 그리스도의 처형에 관해 이렇게 적혀 있어.

64년 7월 19일 네로 황제가 로마 시내에 화재가 나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박해하였다. ‘그리스도인'(라틴어: Chrestiani)이란 명칭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때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 행정관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이 사악한 미신’은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또한 1세기에 살았던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93년경 완성한 그의 야심작 «고대사(The Antiquities)»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불렸다고,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고소를 당했음을 적었어.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한 후에 당시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와 어떤 사람들을 그들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어겼다고 고소를 하고 돌로 쳐죽이도록 그들을 넘겨주었습니다(2).

그는 예수의 일생에 관한 훨씬 자세한 책 «플라비우스의 증언»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지. 참고로, 이 글은 세 부분이 후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가필되었다고 학자들은 생각해. ‘만약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야만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였다’, ‘죽은 지 사흘 째 되는 날에 부활해서 나타났다’ 라는 부분이지. 기독교에 적대적인 요세푸스가 그렇게 적었을 리 없거든.

이 무렵에 예수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만약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야만 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놀랄 만한 기적을 행했고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우리 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고소하는 말을 듣고 난 후 즉시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선고를 내렸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끝까지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해서 나타났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미 이러한 무수히 많은 놀랄 만한 일들을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라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3).

이외에도 «탈무드»의 ‹산헤드린›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있어. 탈무드는 A. D. 500년 경 완성된 유대인의 저작으로 유대교의 구전 율법인 미슈나(Mishna)를 포함하는 책이야.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1).

이외에도 터키 북서방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그가 친구인 트라얀 황제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본디 종교적 운동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는 종교 창시자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 특히나 로마제국과 지도급 유대인들에게 박해와 무시를 받은 기독교의 경우엔 기록이 충분하기 더욱 어렵지. 더군다나 예수의 운동은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만큼 정치적이지도 않았어. 그러나 그런 경향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한 기록은 무척 많은 편이야.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적 기록을 완전히 빼고 예수를 역사적으로 구성해볼까? 예수의 추종자들이 편견을 갖고 적었거나 심지어 왜곡시켰을 수도 있는 기록들은 모두 제외하고 말이야. 고대역사학자인 에드윈 야마우치 교수는 비기독교적인 역사기록에만 의거해서 예수란 인물에 대해 다음을 확증지을 수 있다고 주장해(4).

  1. 예수는 유대인 선생이었다.
  2.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치유를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
  3. 어떤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라고 믿었다.
  4. 그는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배척을 받았다.
  5. 디베랴 지방에서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했다.
  6. 이 수치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은 추종자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을 넘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A. D. 64년경엔 로마에서도 많은 군중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7. 도시와 시골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들 모두가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했다.

수많은 역사적 기록들과 전승들이 웅변해주듯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어. 다만, 그에 대한 기록들이 왜곡되었다던지 의도적으로 수정되었다던지에 대한 이견들이 있을 뿐이야.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기록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예수를 직접 보고 그를 경험한 목격자들의 증언, 즉 성경의 신뢰성부터 살펴보자.

(1)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예수

(2)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지음, 100쪽

(3)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지음, 101쪽

(4)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지음,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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