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 3: 부활 기적의 의미 탐구

전개 셋, 부활 기적의 의미 탐구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적에서 안전하지 못해. 기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이천여 년 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구하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해. 바로 예수는 부활했다는 사실이야. 이것 말고는 예수의 죽음 뒤에 일어난 무수한 사건들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어. 저명한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칼 브라텐(Carl Braaten)은 이렇게 말했어. “아무리 회의적인 역사가라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에 동의한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고, 신앙의 근본이었으며, 신자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었다.”(1)

유대인에게 부활이란 육체의 살아남을 의미했어. 몸은 무덤에 있는 채로 영혼이 자유롭게 분리되어 천국으로 가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어. 그들에게 부활이란 분명한 육체의 회복을 의미했어. 예수의 죽었던 몸을 기억해보자. 팔과 발의 신경이 끊기고 어깨뼈가 탈골되었으며 채찍질로 온 몸의 살점이 벗겨진데다가 심장과 폐에 창구멍이 뚫렸어. 호흡이 끊긴 이후로 그의 심장은 정지했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뇌세포는 죽었어. 몰약과 알로에가 발라졌다지만, 그의 시체는 무덤에 안치된 이틀 동안 얼마간 부패하기도 했을거야.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몸이었어. 그런데 그가 살아났어. 유대인이 본 것은 회복되어 살아 돌아다니는 예수였어. 몸에 상처자국까지 지닌, 바로 그 예수였어. 이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어. 즉, 신이 개입했어. 기적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런 의문을 품게 돼.

“왜 신은 굳이 인간사에 기적을 일으켰을까? 그것은 의도가 담겨진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신은 세상을 향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걸까?”

신의 마음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인간의 역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니, 전 우주의 활동은 어느 목적을 향해 진행되고 있어. 물질들이란 그저 물리적인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의미없이 합쳐지고 분리되는 것들이 아니란 말이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저 의미없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가는 인생들이 아니야. 과학자들이 밝혀낸 자연법칙들은 물리현상들에 의미가 담겨있음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었어.

첫째, 시간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아. 언제나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 이것을 나타내어 주는 물리법칙이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지. 고립된 계에서 추가 에너지의 유입이 없다면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가하게 되어 있어. 우주의 엔트로피는 마치 우주의 시계나 다름없어. 우주의 엔트로피는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꾸준하게 증가해왔으며, 그 엔트로피의 총량은 우주의 나이를 가늠케 해주지. 다시 우주의 엔트로피를 줄일 수 없듯이 우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어. 이것은 세상이 시간의 축을 따라 한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 (세상은 항상 있어오지 않았어. 어느 순간 대폭발이란 사건과 더불어 우주가 시작되었지.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어서 어디론가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어.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주는 목적을 향해 의미있는 항해를 하고 있어. 우리네 짧은 삶이 그렇듯이, 우주도 나이를 먹으면서 지난 과거를 시공간의 벽장 속에 묻고, 새로운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예비하지.

둘째, 우주의 존재는 시작이 있었어. 우주가 어느 시점에 탄생했다는 것, 다시 말해 시작이 있었다는

심리적인 시간의 방향성.

우주의 항상성

우주의 태초. 우주는 시작이 있었어. 무신론자들의 경우, 우주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할 경우에는 우주의 기원을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지. 그런데 우주는 시작이 있었어. 고밀도의 진공상태였던 우주는 터널효과를 거쳐 고밀도의 불덩이같은 초미니 우주가 되었어. 상전이를 거쳐 팽창해오고, 입자를 만들며, 은하와 별들을 낳은 우주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같은 환경도 제공하게 되었지. 시간에 따라 비가역적인 현상을 양산하는 물리법칙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을 강제하지.

우주의 나이는 몇십억년이라고 물리학자들이 추정하지. 우주는 어느 순간 태어났고, 몇십억년간의 별들의 역사를 과거라는 시공간에 보존시키고

열역학 제 2법칙이 이것을 증거해주는 제일 대표적인 법칙이지. 고립된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 증가하게 되어 있어. 름에 따라 고립된 시스템의 열역학 제 2법칙 설명”. 엔트로피(entropy)의

우주배경복사. 빅뱅.

물리학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공식들은 사실 시간에 대해 가역적이야.

우주가 만들어지고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은 무언가 이 모든 활동이 의미가 있음을, 또는 어떤 목적을 향해 이뤄지고 있어.

먼저, 인간의 역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저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의미없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생들이 아니란 말이지. 물리학자들이 이것을 깨닫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어. 첫째는 시간에 방향성이 있다는 거야.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경우는 절대 없지. 지나버린 과거의 사건은 그렇게 시공간의 좌표에서 고정되어버려. 우리가 바꿀 수 없어.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수많은 물리법칙들은

예수 부활의 구체적인 의미를 따져 묻기 전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신의 행위에 목적성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신이 손수 기적을 일으켜가며 굳이 인간사에 간섭할만큼 세상을 향한 목적이 있는지,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연법칙에 따라 진행하며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지 알아보자.

난 신은 선하다고 전제했지. 그리고 그 이타적이고 선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그 창조된 세상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절대적 타자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아

신은 인간을 비롯한 자연을 붙들기 원해.

그리고 그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이성적 추론의 능력을 부여한다고 전제했어. 신이 끊임없이 인간을 붙들고 있는 셈이야.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는 인간의 절대적 타자성과 자유의지를 자신마저도 조종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야.

전개 넷. 하나님의 메세지. 부활한 예수는 메시아의 표상. 그렇다면 메시아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이며 유대인과 더불어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망의 이김)

범신론과 이신론의 정리.

하나님이 인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관계한다고 할 때, 우리의 역사와 삶을 재조명되지. 예수의 부활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를 잘 활용하자)

유대인들은 부활에 관심이 많았어. 저 마지막 날에 부활이 있다고 그들의 신이 약속했고, 그들은 그것을 믿었어.

그런데 예수는 갑자기 세상 끝이 도래하기도 전에 부활했어.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어.

그렇다면 죽었다 살아난 예수는 누구이며,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꼭 해야할 것 같다. 성경에 기반한 것들이 많으니까, 잘 써보자.

예수가 유대인이었던 것을 기억하자.

신이 존재해서 기적을 베푼다면, 의미있는 기적을 베풀 것이다.

과거와 시간의 의미.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한 시간의 방향성.

이스라엘의 인류 대표성. 예수의 대표성.

죽음을 이긴 예수. 다시 말해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거야. 내가 원죄를 전제했지? 인간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은 선한 신이야.

그 선한 신은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

전개 셋, 부활의 의미와 예수 다시보기.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했는지?

또는, 하나님은 기적을 재미로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나님 행위의 역사성.

부활한 예수는 하나님이다

전개 넷, 자존적이고 독자적인 그 초자연적인 존재는 바로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해야만 하나? 아니 그럴 필요없다. 추가적으로 예수가 가르친 문화를 살펴보자. 도저히 그 시대에서 상상할 수 없는 문화다. 아이 존중. 남녀평등. 겸손에 대한 가르침들. 예수는 부활했으니 그를 믿어라? 유대 역사에서 유대민중이 그를 메시아로 인정한 이유. 그리고 그의 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유추)

전개 다섯,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을 말하는가? 기독교 세계관.

예수가 눈 앞에 딱 나타나도 믿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본질은 예수의 몸 안에 숨어 있으며, 우리가 보는 것은 그 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살면서, 같이 함께 하면서 몸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인격과 신격을 통해 우리를 그를 알아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그를 알게 됩니다.

믿음이 영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를 타자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우리 사이에 에덴동산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를 아는 것은 아버지로서 압니다. 믿음은 아는 것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지식으로 발전될 것입니다.

(1)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지음,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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