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 2: 창조, 그리고 기적의 의미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기적에서 안전한 곳에 있지 못해. 자연은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얼마든지 침공당할 수 있지.

태초에

기적은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해야만 해.

하나님이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했을 시, 기적은 그 의미를 담고 있어야만 해. 적합성.

자연법칙에 하나님의 기적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 오해 풀어주기.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기적 하나만 언급하고 싶다. 바로 창조의 기적이야.

무신론자의 반론.

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보다 더 나은 철학을 아는 바가 없다.

신. 참되고 유일한 왕, 자연과 인간의 왕이라면,

기독교의 기적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그 기적들이 드러내는 종교의 전제 구조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기타 기적들보다 훨씬 더 큰 내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적합성.

“왜 신은 굳이 인간사에 기적을 일으켰을까? 그것은 의도가 담겨진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신은 세상을 향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걸까?”

신의 마음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인간의 역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니, 전 우주의 활동은 어느 목적을 향해 진행되고 있어. 물질들이란 그저 물리적인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의미없이 합쳐지고 분리되는 것들이 아니란 말이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저 의미없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가는 인생들이 아니야. 과학자들이 밝혀낸 자연법칙들은 물리현상들에 의미가 담겨있음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었어.

첫째, 시간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아. 언제나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 이것을 나타내어 주는 물리법칙이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지. 고립된 계에서 추가 에너지의 유입이 없다면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가하게 되어 있어. 우주의 엔트로피는 마치 우주의 시계나 다름없어. 우주의 엔트로피는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꾸준하게 증가해왔으며, 그 엔트로피의 총량은 우주의 나이를 가늠케 해주지. 다시 우주의 엔트로피를 줄일 수 없듯이 우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어. 이것은 세상이 시간의 축을 따라 한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 (세상은 항상 있어오지 않았어. 어느 순간 대폭발이란 사건과 더불어 우주가 시작되었지.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어서 어디론가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어.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주는 목적을 향해 의미있는 항해를 하고 있어. 우리네 짧은 삶이 그렇듯이, 우주도 나이를 먹으면서 지난 과거를 시공간의 벽장 속에 묻고, 새로운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예비하지.

둘째, 우주의 존재는 시작이 있었어. 우주가 어느 시점에 탄생했다는 것, 다시 말해 시작이 있었다는

심리적인 시간의 방향성.

우주의 항상성

우주의 태초. 우주는 시작이 있었어. 무신론자들의 경우, 우주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할 경우에는 우주의 기원을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지. 그런데 우주는 시작이 있었어. 고밀도의 진공상태였던 우주는 터널효과를 거쳐 고밀도의 불덩이같은 초미니 우주가 되었어. 상전이를 거쳐 팽창해오고, 입자를 만들며, 은하와 별들을 낳은 우주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같은 환경도 제공하게 되었지. 시간에 따라 비가역적인 현상을 양산하는 물리법칙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을 강제하지.

우주의 나이는 몇십억년이라고 물리학자들이 추정하지. 우주는 어느 순간 태어났고, 몇십억년간의 별들의 역사를 과거라는 시공간에 보존시키고

열역학 제 2법칙이 이것을 증거해주는 제일 대표적인 법칙이지. 고립된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 증가하게 되어 있어. 름에 따라 고립된 시스템의 열역학 제 2법칙 설명”. 엔트로피(entropy)의

우주배경복사. 빅뱅.

물리학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공식들은 사실 시간에 대해 가역적이야.

우주가 만들어지고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은 무언가 이 모든 활동이 의미가 있음을, 또는 어떤 목적을 향해 이뤄지고 있어.

먼저, 인간의 역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저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의미없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생들이 아니란 말이지. 물리학자들이 이것을 깨닫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어. 첫째는 시간에 방향성이 있다는 거야.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경우는 절대 없지. 지나버린 과거의 사건은 그렇게 시공간의 좌표에서 고정되어버려. 우리가 바꿀 수 없어.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수많은 물리법칙들은

예수 부활의 구체적인 의미를 따져 묻기 전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신의 행위에 목적성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신이 손수 기적을 일으켜가며 굳이 인간사에 간섭할만큼 세상을 향한 목적이 있는지,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연법칙에 따라 진행하며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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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sky3에 대하여

Stanford Grad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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